발렌타인 애정의 농도
“레아, 더 없어?”
제가 만든 초콜릿을 한 상자 가까이나 먹어 놓고 더 없냐고 물어오는 남자에 레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너무 많은 초콜릿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어림잡아 30개가 넘는 초콜릿을 먹어 치운 이유가 질투 때문이라는 게 문제였다.
당연히 발렌타인을 준비했던 만큼 료마에게 줄 초콜릿을 더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게 고마운 사람들에게도 초콜릿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어 그들의 것까지 만들었건만, 완성품을 본 료마가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내더니 끝내 그걸 홀라당 입으로 가져가 버렸다.
책망하는 시선을 보내니 뻔뻔한 얼굴로 제게 줄 초콜릿이 아니었냐고 묻는데 그 얼굴에 대고 어떻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에치젠 료마는 자신이 그의 얼굴에 약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가 까먹은 초콜릿이 열 손가락으로도 다 셀 수 없게 되자 레아는 그에게 선배의 초콜릿이 아니니 그만 먹으라는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그걸 듣고 순순히 물러날 료마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질투도 아니었고.
포장해둔 초콜릿이 전부 자취를 감추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료마의 입으로 들어간 선물용 초콜릿에 고개를 절레 저은 레아가 식탁에 걸터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싸늘한 시선을 받은 그가 옅게 웃으며 상황을 무마하려고 한다. 자라면서 는 건 능청스러운 웃음밖에 없는 건지 분명 성년이 되었는데도 어째 학생 때와 변함이 없었다.
그저 몸만 자랐을 뿐이지.
그리고, 얼굴만 조금 더 잘생겨졌고 분위기만 조금 더 성숙해졌을 뿐이지.
속은 여전히 제가 몇 년간 알고 지낸 에치젠 료마 그대로였다. 질투도 많고, 소유욕도 많고. 그러면서도 끈질긴. 물론 가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며 연상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전형적인 악동이었기에 부엌을 살핀 레아는 료마가 오기 전 미리 선반 안에 넣어두었던 초콜릿 상자를 꺼냈다.
“정말이지, 선배의 초콜릿이 아니었다고 몇 번을 말해요?”
제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이니 먹지 말라 얘기해도 모른 척하며 야금야금 먹어버린 그를 타박한 레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료마 몫의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깜짝 선물로 줄 생각을 하지 말고 그에게 제일 먼저 갖다줄 걸 그랬다. 뒤늦게 해 봤자 소용없는 생각을 하며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들고 료마에게 다가선다.
초콜릿을 그만큼 먹어댔으니 그를 위해 남겨둔 초콜릿을 먹을 배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그에게 주기 위해 만들었던 거기에 상자를 건네주자, 다른 초콜릿보다 모양이 곱게 잡힌 것들을 훑어본 료마가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무 예쁜데. 산 거야?”
“…먹기 싫은가 보죠?”
“산 것처럼 훌륭하다는 말이었어.”
쪽. 달래듯 레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인 료마가 초콜릿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파베 초콜릿이 네모난 칸들에 곱게 들어가 있다. 하나를 꺼내 입에 넣자 단맛이 혀에 퍼져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초콜릿을 먹어댔으면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초콜릿까지 뜯는 그를 본 레아는 질린 기색을 보이며 혀를 내둘렀다.
“안 물려요?”
“레아가 만든 건데 물릴 리가 없잖아.”
“보통은 30개씩이나 먹으면 물린다고요.”
료마는 저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분명 물릴 것이었다. 아까 전의 30개 초콜릿도 질투 때문에 오기로 먹은 거지 않은가.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날 것 같아 상자에 손을 뻗자, 그가 제 초콜릿을 도로 가져가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료마가 피식 웃곤 팔을 위로 올렸다.
초콜릿 상자가 료마의 머리 위로 높이 올라간다. 제가 손을 뻗어도 결코 닿지 못할 높이였다. 짓궂은 장난을 치는 연인에 레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뭐예요?”
“레아가 다시 가져갈 것 같아서?”
“너무 많이 먹었잖아요.”
“알았어. 그럼 나 혼자 먹지 않으면 되는 거지?”
“네?”
영문모를 소리에 고개를 기울이자 초콜릿 상자에서 파베 초콜릿 한 조각을 꺼낸 료마가 그것을 레아의 입에 물렸다. 넣지 말고 물고만 있으라는 말에 얼결에 그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는다. 눈만 끔뻑거리는 연인을 바라본 료마는 피식 웃으며 레아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제 앞으로 옅은 그림자가 지는가 싶더니 가까이 다가온 그가 물고 있던 파베 초콜릿의 반쪽을 으득 씹었다. 입술이 살짝 맞닿아 레아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입을 맞춘 건 아니니까, 괜찮지?”
제 허락이 없으면 입술에는 키스하지 않는 료마였다. 이 상황에서 그 사실을 상기시키게 만들며 웃어 보이는 남자에, 얼굴이 붉어진 레아가 쿵쿵거리는 심장 위로 손을 올렸다. 입 안에 남은 것을 모두 먹은 료마가 그런 레아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초콜릿을 만든 건 전데 카카오 향은 그에게서 훅 풍겨왔다.
“아직 8개 더 남았는데.”
여전히 레아의 입술 사이에 끼워진 초콜릿을 혀로 핥은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료마의 혀가 제 입술을 훑고 지나간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해진 레아는 의도가 분명한 말을 곱씹어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안 먹으라고 해도 고집 피우실 거잖아요?”
“네가 싫다는 건 안 해.”
그러니까, 레아. 응?
채근하는 목소리가 초콜릿보다 달았다. 결국 백기를 든 건 레아 쪽이었다. 하나만이에요. 타이르듯 얘기한 여인이 료마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참을 자신은 없다고 속살거린 료마가 여인에게 입을 맞췄다. 반쯤 녹은 초콜릿이 붉고 따뜻한 살과 뒤섞여 녹는다. 농도 깊은 밤이었다.
발렌타인 애정의 농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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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미포함 : 2,150자.
람결님 (@commission_Tim)